탐욕 때문이 아니면 집단적 멍청함 때문?

Posted on December 18, 2008

한 동안(한 2주) 글을 안썼더니 RSS 가입자 수가 900을 넘어섰네요… 역시 입닥치고 있으라는 뜻인지… 그냥 내친 김에 올해 말까지 하나도 안쓰면 1,000명을 넘길지도…

금융위기와 관련해서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게 다 “투자자의(또는 월스트리트의, 은행의, 신용평가기관의, 모든 인간의) 탐욕때문이라는거죠. 내가 아는 한은 지난 몇만 년간 이 탐욕은 변함이 없었죠. 지난 몇십년 새에 탐욕이 결정적으로 늘어났다는 증거가 없는 한은 “탐욕”은 어떤 위기의 원인도 아니죠.

이 부분까지는 똑같이 이야기를 하는 이 하나 올라와서 짧게 인용해 봅니다. 그 까지는 좋은데, 그는 대신 이게 다 컴퓨터때문이라고 주장하는군요.

It is when we examine the combined impact of all of this innovation on our financial markets over the last decade that we see the result was massive collective stupidity. (For those of you who would like to suggest that greed is the culprit – I will assert that that function has been constant since the beginning of time and is irrelevant in explaining the source of this crisis) (Computer and the Internet made the markets historically stupid )

무슨 말인고 하면, 복잡한 금융모델을 사용하면서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이 아주 적어져서 마치 월스트리트의 비밀결사처럼 되었다는 것 하구요(그러니까 알아야 되는 보스들은 마치 영화 친구에 나오는 명대사처럼 “쪽팔려서” 모른다는 말은 안하고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한다는거죠), 그리고 값싼 인터넷 주식거래 때문에 중개인들이 다 죽어서 암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활개를 치게 됐다는거죠. 이 부분은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쪽팔리는” 것이 세계적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좀 웃기고, 공짜 인터넷 주식거래 이전에는 진짜로 똑똑했던 중개인들이 멍청한 짓을 못하도록 막았다는 “아 옛날이여” 식의 판단도 경험적 증거도 부족할 뿐더러 지금 경제위기에서 주식은 논욉니다. 주식시장도 타격을 입었지만, 주식시장이 지금의 위기를 야기한 원인은 절대로 아니라는거죠. 아무리 개인들이 주식시장에서 멍청하게 놀았다고 하더라도, CDO, CDO 스퀘어같은 채권시장이나 CDS 같은 파생상품 시장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였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됐죠.

그냥 개인의 탐욕은 원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까지 동의해서 인용해 봤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본주의 때려쳐야죠. 아담 스미스는 바로 이 탐욕(이기심) 때문에 자본주의는 다 잘 될거라고 했으니까요…

부분적으로는 동의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 또 하나. 금융위기 때문에 미국이 금융 초강대국이 되었다는 이야기 소개합니다.

Contrary to popular opinion, the current crisis has very little to do with the Armageddon that Nouriel Roubini, professor of economics at New York University, predicted over the past few years. In his mind, the widening US current account deficit would eventually top the willingness of the rest of the world to fund it, causing the US dollar to crash while long term interest rates on US Treasury bonds would soar.
That has little to do with this crisis: the US has become the only remaining super-borrower, able to issue thousands of billions of dollars in debt at record low rates while the dollar strengthens. People are unwilling to lend to almost anybody except for the US Treasury. This has allowed the US to provide – at record low cost – about $5,000bn (£3,325bn, €3,700bn) to bail out its financial system and organise a Keynesian reflation of its economy.
At the same time, fairly well behaved countries such as Brazil, Colombia, Mexico, Peru, South Africa and Turkey have essentially lost access to external finance. (The crisis gives US new financial power )

옛날에, 아주 옛날에 부패(정경유착)에 대해서 잠깐 고민해본 적이 있었죠. 박정희 정권이 사라진 이후 한동안 한국의 부패 규모가 증가했었죠(부패를 어떻게 측정하는지 하는 것은 좀 어려운 문제죠. 그냥 그렇다치고…) 그 이유에 대해서 저는 정치권과 경제권 사이의 부패(정경유착)을 하나의 생태계라고 보면, 박정희 정권 당시에는 안정적인 생태계가 있었는데(정치권과 경제권 사이에 오고가는 것이 안정되어 있었는데), 이 시스템이 붕괴할 때는 양방향 채널이 동시에 붕괴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경제권에서 정치권으로 흘러가는 채널은 유지가 됐는데, 역으로 정치권에서 경제권으로 흘러가는 채널은 막혀 버린거죠. 뭐, 확정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법 그럴 듯한 생각이었죠. 당시에는 꽤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이 가설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OTL하긴 했었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미국달러만 찾고, 모두가 미국국채만 찾는 이유는 그 이외의 안전자산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물론 이 이유도 있겠지만) 과거에도 그랬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관성의 법칙” 때문이라는거죠. 과거의 시스템 하에서는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 미국에 수출해서 돈을 벌면 이걸로 안전한 미국에 투자하고, 그러면 미국에서는 다시 중국과 같은 소위 말하는 “이머징 마켓”으로 재투자하는… 하나의 순환계가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고, 여기에서 미국은 “세계의 금융허브” 역할을 했었던거죠. 만약 이런 시스템이 망가진다면, 당장 양방향 채널이 막혀버리지는 않겠죠. 대신 다른 대책이 없으니까 결국 중국 등과 같은 이머징 마켓에서는 다른 대안을 찾을 때까지는 당분간 미국으로 계속 유입이 되겠죠. 그런데, 문제는 과거에는 “이머징 마켓 투자” 등의 형태로 다시 이머징 마켓으로 나가는 채널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왜냐하면 당장 미국 내의 유동성 문제를 잡아야 하니까) 현상이 생기는 것이고, 그러면 한동안은 순환계의 한쪽고리만 작동하는 형태가 유지되겠죠… 만약 그렇다면, 미국의 제로금리와 quantitative easing과 헬리콥터 벤의 효과는 시간이 좀 지나서 나타나겠죠.

마지막으로 quantitative easing이 과연 제대로 효과를 나타낼지에 대한 글 인용 하나…

It is a matter of debate whether or not quantitative easing had much impact on the Japanese economy, even though it coincided with the longest expansion in Japan’s post world war two history (2002-2007). But, I think not.
Quantitative easing was nearly irrelevant to the expansion of real economic activity that began in 2002. The expansion was largely self-financed by corporations’ free cash flow and therefore not constrained by an absence of banks’ lending.
Neither were there big liquidity problems in Japan to be solved by quantitative easing. Capital injections and guarantees to the banks had largely cured them well before the process began.
Money market rates were already low and their spreads were tight to the policy rate. High oil and other input prices ended headline consumer price index deflation, but the CPI less food and energy continue to be nearly flat even now.
This makes it hard to argue that quantitative easing ended deflation; high oil prices did that. Meanwhile, the economy cured on its own most of the structural problems such as excess capacity and too much debt associated with the deflationary environment.
However, the bond market during quantitative easing was anything but smooth. The process ignited a bond bubble, whose eventual collapse destabilised financial markets, even threatening Japan’s hard-earned economic recovery. Long- term interest rates began to plummet in the spring 2002, with 10s reaching 0.48 per cent in June 2003, down 120 basis points over the year.
The yield curve experienced a rolling flattening in which successively longer maturities tightened down on the zero policy rate.
When the bond-bubble burst in June 2003, rates soared and the curve steepened sharply. This created what in Japan is still known as the Var-shock because of the sudden rise in yields and the accompanying jump in volatility triggered when banks, which were using similar risk management models, tried to dump Japanese government bonds at the same time.
The effects on banks’ earnings were so severe that it raised concerns that the economy would be plunged back into another 1990s-style period of economic stagnation.
About all quantitative easing did on the positive side for Japan was to help the BoJ keep its independence from the politicians by giving the appearance of action. (Quantitative easing: lessons from Japan )

일본의 예를 들어 quantitative easing으로는 디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꼼꼼히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역시 올해말까지는 한동안 글을 올리지 말아서 구독자 수 1,000명을 넘기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도…

마이스페이스 이야기

Posted on April 22, 2008

아무래도 이제 (다시) 처음 시작하는 곳이라 너무 허전한 느낌이 들어 계속 글을 쓰게 되는군요.

블로그를 오래 안하다보니 마이스페이스 한국어 페이지가 문을 연 것도 몰랐네요. 그리고, 여기에 대한 블로거들의 반응도 오늘에야 읽어 보았습니다. 대체로 부정적이군요. 지사장도 없고 겨우 13명이 한국 서비스를 한다고? “한국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냐?” 라는 태도 내지는 이것도 해 봤고, 저것도 해 봤어 “근데 이렇게 조잡한 인터페이스로 뭘 하겠다는거니?”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더군요. 아주 부정적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렇게 우습게 보지는 말라 는 글, 그리고 허브 전략 으로 이해하려는 글도 있습니다.) 마치, “니네 돈좀 벌었다면서? 일단 좀 풀지 그래?” “좀 돈 좀 들여서 예쁘고 새롭게 만들어 봐. 우리도 좀 먹고 살게”라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여기에서 마이스페이스의 전략을 옹호할 마음도 충고할 마음도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아 한 번 정리해 보려 합니다.

먼저 조잡한 인터페이스 이야기부터 해 볼까 합니다. “조악한 UI”는 크게 보면 최초 창업자가 UI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HTML 코드이건 CSS이건 자바스크립트이건 무엇이든지 허용하는 자세를 유지했지요. 이렇게 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코드를 모르는 사람의 페이지는 아주 끔찍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템플릿이나 이런 것을 제공하지 않으면… 이건 초창기 마이스페이스에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 같습니다. 최대한의 자유(자기를 표현할 자유)가 거의 그들의 모토였으니 말이죠. 적어도 두 번째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할 때 까지는요. 그 두 번째 문제란 바로 자바스크립트 등을 통해서 시스템을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프로그래밍을 조금만 알거나, 아니면 구글링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친구 수를 획기적으로 늘이는 스팸성 자바스크립트를 쉽게 만들어 자기 페이지에 활용할 수 있게 된거죠. 이런 스팸과 여러가지 문제가 불거지자 마이스페이스에서는 (그때쯤이면 돈도 좀 벌었고) 점진적으로 스크립트의 사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선회합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코드를 가지고 노는 사람들에게 “마이스페이스 개발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API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세한 점은 MySpace Developer Platform 이라는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잠깐 이야기를 돌려 보겠습니다. 한국은 대부분의 해외 서비스 제공자에게 악몽이라고 합니다. 구글이나 마이스페이스 등등. 그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기 때문에 이렇게 유치한 인터페이스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네이버 이야기를 하면서 컨텐츠를 포탈이 독식하고 있기 때문에 열린 모델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바로 싸이월드의 도토리 현상일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들이 인터넷상의 자기 방을 예쁘게 들여 놓으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일까?

이게 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인지 이해하려면 웹 2.0 이야기를 약간은 해야 합니다. 팀 오라일리가 웹 2.0 이야기를 하면서 성공한 인터넷 사업체로 든 것이 바로 구글, 이베이, 아마존 등등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에 대해서 팀 오라일리는 구구절절 늘어 놓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글, 이베이, 아마존은 사용자들에게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베이의 예를 들어 보죠.

미국에 가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거라지 세일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인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 살던 사람이 뉴욕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해 봅시다. 이런 일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 많은 가구와 침대와 가전제품까지 다 들고 가기에는 너무 멉니다. 그렇다고 다 버리고 거기 가서 새로 사자니 너무 비싸고… 그래서 하는 방식이 바로 거라지 세일 등을 통해서 중고로 다 팔아 버리고, 뉴욕에 가서는 거라지 세일에서 중고로 다 사는 겁니다. 뭐, 땅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미국 소도시를 돌아다니다보면 특이한 상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남북전쟁 기념품 판매점 같은 것들인데요, 이런 것도 넓은 땅덩어리의 구석구석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일 것입니다. 한국에서야 어디에 있는 어떤 기념품점을 가더라도 결국은 똑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기념품을 살 가능성이 높지만요…

중요한 것은 이베이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인터넷으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마존에서는 수많은 중고책방들에 살 길을 열어 주었지요. 구글은 블로거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었구요. 이런 것을 흔히 “플랫폼”이라고도 하고 좀 더 어렵게 “에코 시스템(생태계)”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너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줄께 하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이들의 당혹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한국의 웹 사용자의 대부분은 소비자로서의 지위에 아주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굳이 사용자들까지 이걸로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구글이나 옥션같은 곳에서 와서 “너 돈 벌게 해 줄께”라고 이야기하면 눈만 껌벅거리면서, “이게 무슨 고속도로 휴게실 사기야?” 하고 생각하듯이 그냥 가 버립니다. “그냥 팔 거 있으면 팔고 가 줄래?”

마이스페이스의 성공 이유는 예쁜 인터페이스나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웹상의 경험이 아닙니다. 반대로, 한 가지 성공 요인은 인터페이스상의 무한자유였습니다. 이것이 95%의 지저분한 인터페이스를 낳더라도, 그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이스페이스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마이스페이스의 경우에는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채널과 유명세와 돈을 얻을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어떤 직업이나 직종이 사라지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와하지만, 결국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지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컴퓨터가 기계가 아니라, 골방에서 계산자를 가지고 남들이 부탁하는 계산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컴퓨터라는 말도 이 직업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컴퓨터가 나오자 직업으로서 컴퓨터는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프로그래머가 되었습니다. 옛날에 대학가 앞에서 리어커에 신곡 복사본 테입을 팔던 아저씨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들에게 먹고 살 새로운 방식을 알려 준다면, 그리고 그것이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다면, 이것을 우리는 “에코시스템” 내지는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이스페이스에서는 과거의 무한질주 자유를 포기하면서 오픈소셜이라는 것 을 도입했습니다. 마이스페이스에 로그인하면 자기만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옛날 자바스크립트와 HTML 트릭을 가지고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장난하던 사람들에게 직접 사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될지, 과연 성공할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국의 인디음악이나 독립영화 제작자의 풀이 그리 넓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미국과 비교하면… 그렇지만, 누군가 UCC 이야기를 하자, 여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웹 2.0 이야기가 나온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생태계 이야기를 하고 플랫폼 이야기를 하고 소셜 애플리케이션 이야기를 하고 오픈 API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이것이 사용자를 소비자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소비자는 대접받습니다), 생산자 내지는 동반자로 간주하는 접근법은 아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쿨해 보이는 구호나 새로운 마케팅 컨셉이 아니라 같이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의 동반자로 이해하는 접근법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