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Peter Morville의 “Ambient Findability”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검색 2.0”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판되었지요. 제목은 그렇지만, 이 책은 검색과 찾기(길찾기)에 대한 단편적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길찾기, 소셜 소프트웨어, 정보 검색, 의사결정도, 자기 조직화, 진화심리학, 문헌정보학, 그리고 권위” 등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웹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공간의 은유를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는 웹을 항해하고, 웹사이트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보고속도로, 홈페이지, 사이트맵, breadcrumb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네트워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많은 단어, 그러니까, 경로(path), 경계(edges), 구역(districts), 접점(nodes) 및 지형표식(landmarks) 등과 같은 말이 1960년 케빈 린치가 쓴 “도시의 이미지(The Image of the City)”에서 차용한 말이라고 합니다.

옆의 그림에서 hippocampus라고 표시된 부분이 우리가 흔히 “해마”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 아래의 amygdala라는 부분이 편도선입니다. 흔히 우리가 도마뱀의 뇌(lizard brain)이라고 하는 것으로 특히 공포와 같은 직접적인 감정을 다루는 곳입니다 (위키피디어 Lizard Brain 또는 amygdala 는 같은 곳입니다). 해마는 위치 정보 및 단기적 기억을 담당합니다 (위키피디어 Hippocampus ). 위의 책에 의하면 택시 운전사들은 해마가 아주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길을 찾게 하면 해마 부위의 활동이 증가합니다 (32쪽). 더 중요한 것은, 가상 미로나 비디오게임을 할 때도 비슷한 부위가 활발히 움직입니다. 그러면, 택시 운전사는 우리보다도 훨씬 더 나은 웹 서퍼일까요? 책에서도 말하듯이 웹에서 공간의 은유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공간의 은유를 현실로 만드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회사들이 (antarcti.ca, groxis, kartoo 등) 모두 실패합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생각의 연상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요즘 흥미를 가지고 읽고 있는 “행동경제학”에서 (행동경제학을 빼면 요즘은 경제나 투자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말하는 소위 도마뱀의 뇌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요지는 시장에서 돈을 벌려면 시장을 아는 것보다, 회사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원초적 감정을 통제하는 도마뱀의 뇌가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우리는 시장에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Blink”에서 이야기하는 순간 판단(snap decision)은 (거의) 모두 도마뱀의 뇌의 판단입니다. 투자에서는 별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군요.
그러니까, 이제는 경제학에서도 합리성이 지배하는 공간과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공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이 1900년대 초의 예수회 소속 고생물학자/철학자 Teilhard de Chardin이 이야기하는 noosphere 의 이야기와 비슷할까요? 나아가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굴의 비유 이야기도 생각나는군요.
또 이런 이야기를 하면, 김국현님 이 말하는 이상계, 환상계, 현실계의 구분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현실계에서 공간감각은 해마가 통제합니다. 그리고, 이 해마는 환상계(온라인 게임의 세계)에서도 유효합니다. 택시 운전사는 뛰어난 웹 서퍼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히 RPG의 세계에서는 날리겠군요. 그렇지만, 웹의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한 마디로 해마가 지배하는 공간의 측면보다는 의미론적인(semantic) 공간의 측면이 더 강합니다.
웹을 공간에 비유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비유일 뿐입니다. 즉 웹 스페이스에는 공간이 없습니다. 이것은 의미론적(semantic) 공간이지요. 비유를 할 때는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거죠.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가 봅시다. 2-3년전 아거님은 블로그의 에피소딕 기억과 시맨틱 기억에 대한 글 을 썼지요. 이 글에서 아거님은 많은 블로거들이 경험 공유하기와 관계 맺기 중심의 에피소딕 기억을 중심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에피소딕 기억은 위의 해마가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이제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 보겠습니다. 정보 이론에서 수량화하고 수학화하고 물리학적인 방법을 채택하려고 많은 시도가 있어왔지만, 이런 시도가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 즉 수량화의 블랙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정보과학에서는 이 블랙홀을 “사용자”라고 합니다 (54쪽). 단적인 예로, 수량화를 위한 첫걸음은 정보의 단위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정보란 무엇일까요? 정보를 규정할 때 데이터, 정보, 지식 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평가 및 검증된 데이터를 정보라고 하며, 이해하고 있는 정보를 지식이라고 합니다 (46쪽). 그렇다면, 인간이 개입되지 않은 정보나 지식이 가능할까요?
웹 2.0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맨틱 웹 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맨틱 웹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사용자”는 의미론적인 블랙홀일 수 있는 것이지요. 피터 모빌이 이야기하듯이, 인간의 발전은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 역사의 99%의 시간동안 인간은 수렵과 채취를 통해 먹고 살았지요. 이 기간이 약 천만년이라고 한다면, 농경의 역사는 1만년, 그리고 산업혁명은 200년, 그리고 정보혁명은? 그야말로 찰라의 세월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상계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지요. 이상계에서 어쩌면 우리의 도마뱀의 뇌는 두려움을 느끼고, 우리의 해마는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행동경제학의 핵심 주제가 동굴에서 살던 우리 선조들이 진화시킨 유전자는 현대의 금융환경에는 맞지 않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쩌면 시맨틱 웹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시맨틱 웹 보다는 구글의 페이지랭크나 딜리셔스 북마크같은 집단지성식의 접근법이 더 마음에 와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싸이월드 현상이나 네이버 현상도 한국인들이 해마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하나됨,” 일치, 대동, 단결, 화합, 통일 등의 절대선들은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이데올로기일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분열하고 갈등하고 대립하고 서로 싸우고 투쟁하는 것이 악이라구요? 어떤 나라에서는 그게 바로 정치인의 “사명” 내지는 “job description”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구요. 모든 정치인들이 일치하고, 대동단결하고 화합하고 화해하고 통일되어야 한다면, 왜 국회의원을 300명씩이나 뽑아야 하죠? 한 명만 있으면 되지… 말이 좀 새네요. 다시 돌아갑니다. 어쩌면 인간과 기계의 불가피한 대결은 터미네이터에서 말하는 것처럼 로봇 때문이 아니라, 금융 시장 때문에, 웹 때문에 그리고 매트릭스에서 말하듯이 환상계 때문에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윌리엄 깁슨이 말한 것처럼,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균등하게 분포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