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땅들의 천국

Posted on February 23, 2010

모두가 3M을 본받고 싶어 합니다. 모두가 전설의 Bell Labs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 하고, 구글처럼 되고 싶어하고, 애플처럼 되고 싶어하고…

제임스 왓슨은 25세, 아이작 뉴턴은 23세, 알버트 아인시타인 26세, 하이젠베르그 20대 중반, ...

또, 아르키메데스 20대, 갈릴레이 22세, 퀴리부인 45세, 브랙 25세, 오펜하이머 23세…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발견/기여를 한 나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젊다는 미국에서도 이 나이에는 연구기금을 받지 못합니다. 조나 레러의 말 입니다.

In 1980, the largest share of grants from 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went to scientists in their late 30s. By 2006 the curve had been shifted sharply to the right, with the highest proportion of grants going to scientists in their late 40s. This shift came largely at the expense of America’s youngest scientists. In 1980, researchers between the ages of 31 and 33 received nearly 10% of all grants; by 2006 they accounted for approximately 1%. And the trend shows no signs of abating: In 2007, the most recent year available, there were more grants to 70-year-old researchers than there were to researchers under the age of 30.

좀 더 읽어 보자면…

The end result, says Andrew Serazin, program officer at the Gates Foundation, is that many risky projects have been given a chance to succeed. In the most recent round of applications the funding rate of post-docs and grad students—scientists at the start of their careers—was three times higher than that of their established professors. “One of the tragedies of science is that many of the most talented people with the best ideas don’t have access to capital,” Mr. Serazin says. “We’re trying to fix that.”

그렇지만, 그가 말하듯이 Janelia Farm도 있고, 3M도 있고, Bell Labs도 있고, Grand Challenges Exploration Program (Gates Foundation)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저요? 저는 데모하다 군대 갔다오니 20대가 끝나 있더라는…

개념 노트: 진화론은 왜 그렇게 "팔기" 어려울까?

Posted on February 12, 2010

이런 이야기를 하면 으례 지동설은 더 설득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지동설 때는 한명만 대표로 빠따 한 대 맞고 치웠는데, 진화론은 거의 단체기합 수준이라고 생각… 왜 그럴까요? 솔직히 저는 진화론보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진화론에 반대하는 이유에 더 관심이 갑니다. 뭐랄까, 싸움 구경이 훨씬 더 재밌기도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깎아내리는 이론이라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브레히트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에 보면 거의 웅변적으로 설명하고 있죠. 좀 길지만… 귀찮으면 지나가면 되니까…

THE LITTLE MONK: But I would mention other reasons. Let me speak for a moment of myself. I grew up as a son of peasants in the Campagna. They were simple people. They knew all about olive-trees, but very little else. While observing the phases of Venus, I can see my parents, sitting by the hearth with my sister, eating their cheese. I see above them the beams blackened by centuries of smoke, and I see clearly their old, work-worn hands and the little spoons they hold. They are not rich, but even in their misfortune there lies concealed a certain invisible order of things. There are those various rounds of duties, from scrubbing the floor, through the seasons in the olive grove, to the payment of taxes. There is even regularity in the disasters that befall them. My father’s back becomes bent, not suddenly, but more and more each spring among the olive-trees, just as the child-bearings which have made my mother less and less a woman have followed one another at regular intervals. But they call up the strength to sweat up the stony paths with their baskets, to bear children, yes, even to eat, from the feeling of continuity and necessity which is given them by the sight of die soil, of the trees springing with new green foliage every year, of the little church, and by listening every Sunday to the Bible texts. They have been assured that the eye of God rests upon them; searchingly, yes, almost anxiously – that the whole universe has been built up round them in order that they, the actors, can play their greater or lesser parts. What would my people say if they learned from me that they were really on a little bit of rock that ceaselessly revolves in empty space round another star, one among very many, a comparatively unimportant one? Why is such patience, such acceptance of their misery, either necessary or good today? Why is there still virtue in Holy Writ, which explains everything and has established the necessity of toil, endurance, hunger, resignation, and which now is found to be full of errors? No, I see their eyes grow frightened! I see them dropping their spoons on the hearth stone. I see how they feel cheated and betrayed. So there is no eye resting upon us, they say. We must look after our selves, untaught, old and worn out as we are? No one has provided a part for us on this earthly, miserable, tiny star which is not independent and round which nothing revolves? There is no meaning in our misery, hunger is simply not- having-eaten, and not a test of strength; exertion is just stooping and tugging – with nothing to show. So do you understand that in that decree of the Holy Congregation I perceive true maternal compassion, great goodness of soul?

그 이유 밖에 없을까요? 하다 보니 인간모욕을 하게 된 과학은 꽤 많을 것 같은데…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이나 뭐 그런 것은? 핵폭탄은 엄청나게 인간존중적인가?

다른 이유로는 진화라는 것이 인간의 경험범위 내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콩 가지고 장난친 그 신부님 은 수 세기에 걸쳐서 한 것도 아니고… 또 요즘 과학중에 인간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게 뭐 몇개나 되겠어요? 쿼크나 수퍼스트링이나 블랙홀은 관찰할 수 있나? 그럼,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나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 ㅎㅎ

또 다른 설명은 인간의 사고는 어쩔 수 없이 범주적이기 때문에, 범주의 경계선에 관한 사고인 진화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동물은 다른 동물들을 먹잇감으로 범주화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로 범주화하여 자신을 보호한다. 다른 동물들의 범주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MIT의 한 연구팀은 원숭이를 활용한 사진을 통해 고양이와 개의 일반적인 모습을 인식하도록 훈련받았다… 이런 학습 능력을 ‘뇌의 적승성’ 또는 ‘유연성’이라고 지칭한다. 즉, 원숭이의 전두엽 피질에 있는 뉴런 집단이 특정 범주에 각각 반응한다는 것이다.
MIT 연구팀은 고양이와 개의 형상을 혼합시킨 카메라 이미지를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원숭이에게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보여주는 이미지의 50퍼센트 이상이 개일 경우, 개와 관련된 범주 뉴런이 작동했으나 이미지의 50퍼센트 이상이 고양이로 바뀌자 개 사진에 반응하였던 범주 뉴런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고양이 사진에 반응했던 범주 뉴런이 작동했다. 두뇌의 다른 영역들은 이런 키메라들의 신체 구성비를 관찰하지만, 범주 뉴런은 타협하지 않고 하나로 결론을 내리는 성향을 나타낸다. (닐 마틴, 해빗, 104-5쪽)

이런 연구는 그냥 MIT 연구팀이라고 말하지 말고 도대체 어디서 베껴 왔는지 구체적으로 적거나 적어도 각주라도 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런 범주화의 실패 때문에 애플의 뉴턴이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말이 좀 꼬이는 느낌이…

애플은 1993년 세계 최초로 PDA 뉴턴을 출시했지만 한동안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사람들이 뉴턴이라는 새로운 장치를 어떻게 범주화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자수첩을 출시한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팜 파일럿이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고객들의 마음속에 PDA라는 새로운 제품 범주가 생겨났다. (107쪽)

그러니까, 범주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애플 뉴턴은 망했는데, 나중에 팜 파일럿이 성공하고 나니까 사람들 마음속에 새로운 범주가 생겨났다구요? 그럼 팜 파일럿은 왜 안망했을까요?

말이 새는 느낌이지만, 도대체 진화론에 대해서 그렇게나 강력한 저항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념 노트: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Posted on February 12, 2010

자주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1953년 예일대학 졸업생들을 상대로 자기 목표를 글로 쓴 사람이 얼마냐 되는지 물었더니 약 3%였습니다. 20년이 지나 이 졸업생들의 부를 조사했더니 앞에서 목표를 글로 썼던 3%가 가진 재산이 나머지 97%가 가진 재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누가 한 이야기일까요? 지그 지글러? 브라이언 트레이시? 안토니 로빈스? 제이 리펜베리?

서로가 서로를 베낍니다. 그런데, 그런 연구는 한 적이 없었다고 하는군요. 제목도 의미심장합니다. 성공하려면 이런 사람들 말을 듣지 마라

As further evidence, Spengler provided excerpts from the 1953 yearbook. No one stated personal goals, but most of the graduates predicted their future lines of work: Roberto Goizueta, Coke’s CEO, predicted his future would be with Cuba’s Compani Industrial del Tropico S.A.; William Donaldson and Dan Lufkin, founders of Wall Street’s Donaldson, Lufkin & Jenrette, forecast futures in law. Forrest Mars, Jr., now chairman and CEO of Mars, Inc., listed “no” for employment possibilities.
Finally the CDU went to Yale for the last word on the Class of 1953. Research Associate Beverly Waters reports that a recent outbreak of articles citing the study in publications as diverse as Dental Economics and Success magazines prompted her to undertake an exhaustive search of Yale alumni archives—where she found no evidence that such a study had ever been conducted. Says Waters, “We are quite confident that the ‘study’ did not take place. We suspect it is a myth.” (Fast Company )

아마도 머니해킹을 읽은 사람이라면, 제가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를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알겁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죠. 목표가 없는 사람이 그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을 거라는 의미에서… 그러니까 목표설정은 목표달성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취지에서요… 이런 연구가 아예 없었고, 그냥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은 좀 놀랍네요.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요? 리처드 와이즈만의 “59초”라는 책이 이런 식의 어반 레전드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심리학에(심리학 연구를 빙자하여 만들어진) 이런 어반 레전드가 많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는 않습니다.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뭐, 제가 싫어하는 분야에 대해서 비판하는 책이라니 좀 호기심이 생기긴 합니다. 책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런 식의 어반 레전드의 규모나 영향력, 그리고 폐해가 상상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 강연, 세미나, 컨설팅 등등등… 어쩌면 그게 이유일 수도 있겠죠.

샌드맨과 골룸

Posted on October 08, 2009

오랫만에 영화나 다시 감상한다 생각하시고, 것두 싫으면 그냥 영어 공부나 한다고 생각하시고…

피터 파커: 플린트 마코, 벤 아저씨를 죽인 사람이요. 어젯밤 그가 죽었어요.
매리 아줌마: 아, 어떻게 된 일이니?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이 죽였어요.
매리 아줌마: 스파이더맨이? 이해할 수가 없구나. 스파이더맨은 사람을 죽이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니?
피터 파커: 아, 그러니까, 그가 … 내가 생각하기에 … 아주머니가 생각하시기에 … 죽을 만한 짓을 했잖아요. 아닌가요?
매리 아줌마: 누가 죽어야 하는지 살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구나.
피터 파커: 그렇지만, 매리 아줌마, 그가 벤 아저씨를 죽였다구요.
매리 아줌마: 벤 아저씨는 우리에게는 온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었지. 그렇지만, 벤 아저씨는 우리가 단 1초라도 가슴 속에 복수심을 가득 담고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 같구나. 그건 독약과도 같은 것이지. 너를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단다. 네가 깨닫기도 전에, 이 감정은 아주 끔찍한 것으로 변해 버리지.

Peter Parker: Flint Marko. The man who killed Uncle Ben, he was killed last night.
Aunt May: Oh, my. What happened?
Peter Parker: Spider-Man killed him.
Aunt May: Spider-Man? I don’t understand, Spider-Man doesn’t kill people. What happened?
Peter Parker: I, uh… He… he was… I thought that—That you’d feel… He deserved it, didn’t he?
Aunt May: I don’t think it’s for us to say whether a person deserves to live or die.
Peter Parker: But, Aunt May, he killed Uncle Ben.
Aunt May: Uncle Ben meant the world to us. But he wouldn’t want us living one second with revenge in our hearts. It’s like a poison. It can—It can take you over. Before you know it, turn us into something ugly.

“빌보가 기회가 있을 때 그 사악한 놈을 찔러 죽이지 않은 것은 참 안된 일(불쌍한 일)이에요!”
“불쌍하다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란다.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그리고 자비심. 필요 없이 생명을 죽이지 않겠다는 마음. 그리고, 그는 그 상을 충분히 받았단다, 프로도. 알겠지만, 그는 사악한 세력으로부터 거의 상처도 받지 않았고, 결국에는 탈출할 수 있었지. 이 모든 것이 바로 그가 맨 처음에 바로 이렇게 반지를 가졌기 때문이란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 이해할 수가 없군요. 지금 하시려는 말씀이 당신과 엘프들이 그가 그렇게나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이후에도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것인가요? ... 그는 죽어 마땅해요.”
“죽어 마땅하다고! 물론 그는 죽어 마땅하지… 그렇지만 너무 쉽게 죽음에 관한 심판을 내리지 말거라.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모든 일의 끝을 알지는 못한단다. 나는 골름이 죽기 전에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니. 또 그는 반지와 운명적으로 엮여 있단다. 내 느낌으로는 그는 아직도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 같구나.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그리고, 그 때가 오면, 빌보가 가졌던 그 동정심이 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거야. 분명히 너의 운명도 포함해서.”

“What a pity Bilbo did not stab that vile creature, when he had a chance!”
“Pity? It was pity that stayed his hand. Pity, and Mercy: not to strike without need. And he has been well rewarded, Frodo. Be sure that he took so little hurt from the evil, and escaped in the end, because he began his ownership of the Ring so. With Pity.” ...
”... I cannot understand you. Do you mean to say that you, and the Elves, have let him live on after all those horrible deeds? ... He deserves death.”
“Deserves it! I daresay he does… [But] do not be too eager to deal out death in judgment. For even the very wise cannot see all ends. I have not much hope that Gollum can be cured before he dies, but there is a chance of it. And he is bound up with the fate of the Ring. My heart tells me that he has some part to play yet, for good or ill, before the end; and when that comes, the pity of Bilbo may rule the fate of many – yours not least.”

뭐, 누구 하나 넘어졌다 하면, 눈 가리고 귀 가리고 같이 저주를 퍼붓는 것 만이 자기를 그 사람과 구분시키고 자기가 면죄부를 받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날뛰는 사람들이 꼴보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뭐 그럴 주제도 못되고…

그냥, 옛날에 본 영화나 다시 감상하시자구요…

적자생존의 개념

Posted on November 17, 2008

제가 아래에 쓴 글 에 대해 intellectual wunderlust의 새로운 글 이 빨리 올라왔네요. 그래서 자기 전에 하나 더 써 봅니다.

적자생존이 항진명제(tautology)인지 하는 것은 제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칼 포퍼가 한 말이죠.

When speaking here of Darwinism, I shall speak always of today’s theory—that is Darwin’s own theory of natural selection supported by the Mendelian theory of heredity, by the theory of the mutation and recombination of genes in a gene pool, and the decoded genetic code. This is an immensely impressive and powerful theory. The claim that it completely explains evolution is of course a bold claim, and very far from being established. All scientific theories are conjectures, even those that have successfully passed many and varied tests. The Mendelian underpinning of modern Darwinism has been well tested, and so has the theory of evolution which says that all terrestrial life has evolved from a few primitive unicellular organisms, possibly even from one single organism…
The fact that the theory of natural selection is difficult to test has led some people, anti-Darwinists and even some great Darwinists, to claim that it is a tautology. A tautology like “All tables are tables” is not, of course, testable; nor has it any explanatory power. It is therefore most surprising to hear that some of the greatest contemporary Darwinists themselves formulate the theory in such a way that it amounts to the tautology that those organisms that leave the most offspring leave the most offspring. And C.H. Waddington even says somewhere (and he defends this view in other places) that “Natural selection … turns out … to be a tautology”. However, he attributes at the same place to the theory an “enormous power … of explanation”. Since the explanatory power of a tautology is obviously zero, something must be wrong here. (Karl Popper on the scientific status of Darwin’s theory of evolution)

위키피디어의 칼 포퍼 항목에도 다윈주의 논쟁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아래 글에서 한 말도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는 다윈주의가 tautology로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고, 그렇게 구성하는 사람도 실제로 많았다는 것이구요, 그리고 다윈주의가 애국주의의 근거라기보다는 애국주의의 근거로 이용된 사례가 많다는 이야기였죠. 리처드 도킨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두 개의 포인트에서 intellectual wanderlust에서 하는 말이나 제가 하는 말이나 그닥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게 이용된 경우가 많았었다는 이야기인거죠. (이론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이해한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한 답은 아니죠. ^^ 리처드 도킨스 인용해 봅니다.

Evolution works by natural selection, and natural selection means the differential survival of the ‘fittest.’ But are we talking about the fittest individuals, the fittest races, the fittest species, or what? For some purposes this does not greatly matter, but when we are talking about altruism it is obviously crucial. If it is species that are competing in what Darwin called the struggle for existence, the individual seems best regarded as a pawn in the game, to be sacrificed when the greater interest of the species as a whole requires it. To put it in a slightly more respectable way, a group, such as a species or a population within a species, whose individual members are prepared to sacrifice themselves for the welfare of the group, may be less likely to go extinct than a rival group whose individual members place their own selfish interests first. Therefore the world becomes populated mainly by groups consisting of self-sacrificing individuals. This is the theory of ‘group selection,’ long assumed to be true by biologists not familiar with the details of evolutionary theory, brought out into the open in a famous book by V.C. Wynne-Edwards, and popularized by Robert Ardrey in The Social Contract. The orthodox alternative is normally called ‘individual selection,’ although I personally prefer to speak of gene selection. (The Selfish Gene, p. 7)

그리고,

Although the group-selection theory now commands little support within the ranks of those professional biologists who understand evolution, it does have great intuitive appeal. Successive generations of zoology students are surprised, when they come up from school, to find that it is not the orthodox point of view. For this they are hardly blamed, for in the Nuffield Biology Teachers’ Guide, written for advanced level biology schoolteachers in Britain, we find the following: ‘In higher animals, behavior may take the form of individual suicide to ensure the survival of the species.’ The anonymous author of this guide is blissfully ignorant of the fact that he has said something controversial. In this respect he is in Nobel Prize-winning company. Konrad Lorenz, in On Aggression, speaks of the ‘species preserving’ functions of aggressive behavior, one of these functions being to make sure that only the fittest individuals are allowed to breed. This is a gem of a circular argument, but the point I am making here is that the group selection idea is so deeply ingrained that Lorenz, like the author of the Nuffield Guide, evidently did not realize that his statements contravened orthodox Darwinian theory. (p. 8)

손 아파서 번역은 못하겠네요. 그러니까 핵심은 집단 수준에서의 적자생존이라는 이야기는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이야기인 셈이구요, 지금은 주류가 아니지만, 꽤 많이 받아들여졌던 이야기인거구요… 나치즘과 사회진화론의 관계도 꽤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죠.

노망난 시인과 진화론이라는 떡밥

Posted on November 16, 2008

주말이라 이제 경제관련 뉴스도 좀 그만보고 좀 놀려고 그러다가 블로그에 올릴 것도 마땅찮고 좀 쉬려다가 intellectual wanderlust의 진화론 떡밥 을 보고 한 번 물어 봅니다. 원래 프레시안에 올라온 김지하의 글 을 읽고 언젠가는 한 번 써 보려고 했었죠. 옛날에 김지하시인을 (쪼끔) 좋아했었기 때문에, 위 글을 읽고는 드디어 노망났구나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일단 그 이야기부터 합니다. 김지하시인의 주장을 한 마디로 하자면,

내가 원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원효가 쓴 통섭이라는 말을 어떻게 싸가지 없는 사회진화론자(라고 읽고 국가사회주의자 내지는 나찌라고 읽습니다)인 에드워드 윌슨이 쓴 말을 번역하는 데 쓰냐? 증말 싸가지 없게. 두고 보겠어.

사실 진화론이 인문학(요즘은 이런 말을 많이 쓰더군요)에서 인기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문학자들이 자연과학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고, 자연과학자들이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죠. 인문학자들 중에서 앞장서서 다윈주의를 수용하였던 사람들이 남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맑스주의자와 나치주의자) 인문학에서 자연도태된거죠. 그리고, 요즘도 다윈주의를 이야기하면 약간 색안경을 끼고 보구요. 대표적인 예가 intellectual wunderlust에서 인용한 적자생존에 대한 오해죠.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개념에 따르면 기득권 세력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적자이기 때문에 잘 사는 것이다. 억울하면 너희도 경쟁에서 살아남던가.

여기에 대해서 적자생존이 당위명제가 아니라 존재명제라는 그러니까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이야기도 약간 진화가 덜된 인문학의 주장을 반론으로 제시하는거죠… 제가 보기에는…

실제로 적자생존의 문제는 두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이게 순환논법으로 보인다는거죠. 그러니까 앞에 생략된 말을 추가하자면 이 말은 “(생존에 적합한) 존재가 생존한다”는 이야기로써, 마치 “결혼을 안한 사람은 총각이다”는 말처럼 논리적으로 옳은 말이지만, 우리에게 어떤 추가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그러니까 틀릴 수가 없는) 연역명제라는 비판이죠.

둘째 비판은 나찌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아리아족이 우월하니까 유태인은 그냥 까버려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인건데요…

이런 주장에 대해서 좀 더 세련된(그러니까 좀 더 진화한) 논리는 바로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이야기한 주장이죠. 그것은 바로, 이렇게 생존에 적합해서 생존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 (인간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개인이냐, 인종이나 종족이냐 또는 인류 전체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 다윈이 적절한 대답을 해 주지 않고 그냥 생존하지 못했다는거죠.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는 이런 생존의 주체가 바로 유전자라고 합니다.

We have now arrived back at the point we left at the end of Chapter 1. There we saw that selfishness is to be expected in any entity that deserves the title of a basic unit of natural selection. We saw that some people regard the species as the unit of natural selection, others the population or group within the species, and yet others the individual. I said that I preferred to think of the gene as the fundamental unit of natural selection, and therefore the fundamental unit of self-interest. What I have now done is to define the gene in such a way that I cannot really help being right! (The Selfish Gene, p. 33)

이게 두번째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답이 되는지는 너무 당연하죠.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사회진화론은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가 종족 또는 인종이라고 생각한거죠. 그래서 이게 그런 애매한 애국주의의 근거가 되는거구요. 그러니까, 자연선택의 단위는 국가, 민종, 인종이니 개인은 그런 더 큰 단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거죠.

이게 첫번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답이 되는지는 좀 더 까다로운데요… 이 말에 대답하자면, 생존을 규정해야 합니다. 이 말에 대답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도대체 “유전자가 생존한다”는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쪼금 궁금하긴 하죠. 리처드 도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Darwin’s ‘survival of the fittest’ is really a special case of a more general law of survival of the stable. The universe is populated by stable things. A stable thing is a collection of atoms that is permanent enough or common enough to deserve a name. (p. 12)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면 진화론이나 적자생존이나 그런 이야기는 결국은 앞에서도 말했던 엔트로피의 특수한(생물학적인) 경우가 되는건가요?

어차피 머리 열나게 RPM 굴려봐야 뚜렷한 대답도 없는 골치아픈 경제 문제는 좀 접어두고 좀 즐거운 지적 유희에는 진화론만한 떡밥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추: 그러니까 결론은 위에 링크된 유시민의 비디오는 보지도 않았지만(시간의 압박) 다윈주의적 애국주의는 (진화가 덜된) 19세기 다윈주의의 산물이라는 거죠.

오바마의 젊은 시절

Posted on November 06, 2008

오바마, 아주 멋진 사람이죠.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마 한국으로서는 별로 원하지 않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통점찾기 놀이나 하면서 그렇게 오바할 필요도 없겠죠. 반대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는 알아야죠. 아래에 번역 붙입니다.

장면 1:

  • 옥시덴탈대학
  • 새로 사귄 친구들이 이름을 배리에서 원래 이름인 바락으로 바꾸라고 했다. 1980년 크리스마스 휴가때 하와이로 돌아간 바락은 가족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 결정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 그 곳에서 그는 다른 다인종학생들과 친구가 되었다. 몇몇은 검둥이(black)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으며, 피부색 때문에 그들의 인종적 전통의 한쪽만 선택하고 다른 쪽은 버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장면 2.

  • 오바마는 친구 가운데 하나가 백인들은 자기에게 단 하나의 인종만 고르고 그 결정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고 강제하지 않았지만, 흑인들은 그렇게 해야한다고 강제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기억하였다.

장면 3

  • 나중에 오바마는 이렇게 썼다. “나는 친구들을 신중하게 골랐다.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흑인 학생들. 외국인 학생들. 멕시코게 미국인들.”
  • “마르크스주의 교수와 구조주의적 여성주의자들과 펑크락을 공연하는 시인들.”

장면 4

  • “우리는 담배를 피우고, 가죽잠바를 입었다. 밤에는 기숙사방에 모여 신식민주의, 프란츠 파농, 유럽중심주의, 혈연주의 등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장면 5

  • “우리가 복도의 카페트에 담배를 비벼 끄거나 스테레오를 너무나도 크게 틀어서 벽이 흔들릴 때면, 우리는 부르조아 사회의 숨막히는 억압에 저항한다고 생각했다.”
  • “우리는 무관심하지도, 부주의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소외된 것이었다.”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졌다는 것이 특히 하와이같은 곳에서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냥 대학때 알고 지내던 친구같네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게, 미국의 힘이 아닐까 잠깐 생각해 봅니다. 한때는 우리도 비슷한 호사를 누렸었지만… 참, 만화는 “Presidential Material: Barak Obana”라는 만화책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80:20 법칙과 엔트로피

Posted on October 08, 2008

가끔씩, 내가 생각해도 뭔가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불온하다는 게 아니라 뭔가 내가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엊그제처럼요…

밥 잘 먹고, 집에 와서 자기 전에 인터넷을 켰죠. 그리고, 조직내 2:8 가르마 라는 글을 읽었던 게 화근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흔히 파레토 법칙 으로 알려진 80:20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합니다 (파레토 법칙의 프랙탈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옛날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갑자기 조직내 80:20의 법칙을 극복하는 리더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장자 이야기로…

당신이 넓은 황야를 걸어 간다고 하자. 땅은 더 없이 넓고 크지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땅을 딛는 부분일 뿐이다. 나머지 부분은 직접적으로 필요 없는 부분이라고 해서 더 파버린다면 까마득한 절벽 위에 발 딛는 부분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래도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으로 나누어 생각하겠는가? 쓸모 있는 것이 쓸모 있으려면 쓸모 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redundancy) 생각이 났죠.

Redundancy in information theory is the number of bits used to transmit a message minus the number of bits of actual information in the message. Informally, it is the amount of wasted “space” used to transmit certain data. Data compression is a way to reduce or eliminate unwanted redundancy, while checksums are a way of adding desired redundancy for purposes of error detection when communicating over a noisy channel of limited capacity.

그리고, 뒤이어 그럼 혹시 80:20의 가르마가 확률 이야기인가라는 질문과, 그러니까 80:20 상태가 엔트로피 인가라는 것과, 에… 또… 더 멀리 가기 전에, 한 두달 전에 읽은 책에서… 열역학의 엔트로피에 대해서,

엔트로피가 질량이나 온도에 비해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엔트로피라는 측정값이 탁자의 질량이나 자전거의 속도처럼 계량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집합 전체의 배열(configuration)을 확률의 개념으로 정리한 것이다. 즉, 원자로 이루어진 집합의 가장 확률이 높은 배열, 또는 우리가 언급했던 상자와 구슬의 예에서처럼 구슬을 상자 속에 던졌을 때 나올 확률이 가장 높은 결과 등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물질의 배열의 확률이 높으면 높을 수록(상자와 구슬의 실험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결과) 그 배열(또는 결과)의 엔트로피도 높아진다. (찰스 세이프, 만물해독, 65페이지)

그리고, 정보 엔트로피에 대해서,

정보이론의 법칙들은 열역학의 법칙들과는 약간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 이러한 열역학의 법칙 대신 정보 이론의 법칙에서 보면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약간 달라진다. 처음에 상자는 평형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에 에너지를(여기서도 에어컨을 작동시키든지 아니면 맥스웰의 악마를 동원하는 방법으로) 투입해 상자 속의 분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한다. 이 처리 과정은 상자 안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변화시킨다. 브리유앵에 따르면, 맥스웰의 악마는 정보를 용기에 전달해서 뜨거운 분자와 차가운 분자를 분리한다. 그러나, 에너지 투입을 중단하면 저장되었던 정보는 상자 밖으로 유출되어 환경 속으로 사라진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자면 저장된 정보를 흩어서 없애버리려는 시도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려는 시도와 똑같아 보인다. 이 두 가지 시도는 완전히 동일하다. (위의 책, 107페이지)

그러니까,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알려진 이 80:20의 법칙이라는 게 엔트로피인가라는거죠… 마치, 감독하는 사람이 없으면 회사에 땡땡이치는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그래도 20명은 일한다는… 그래서 엔트로피를 높이지 않으려면 누군가가 나서서…

뭐 그렇다는 거죠.. 뭐… 그러다가 또 생각이 난게, 마치 미국이 기침만 해도 한국이(이번 경우에는 전세계가) 독감에 걸리는 이유가, 혹시 미국 금융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낮추려다보니 바깥의 엔트로피를 높인 게 아닐까라는 헛생각도… 대체로 이런 헛생각은 이렇게 적어 두어야 머리에서 지워지죠… ^^;;

남이야 종교차별 하건말건

Posted on September 10, 2008

몇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커피나 마시며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친구가 왔었죠.

친구: 무슨 특별한 일 있어?
나: 흠… 별 건 없고, 스토킹을 금지하는 법이 생긴대…
친구: 그래? 그럼 아직 그런 법이 없단 말야? 뭐하고 있어! 빨리 가자!

ㅎㅎ 지금은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때 도대체 어떤 거짓말로 그 친구가 스토킹하러 가는 것을 말렸는지 잘 기억이 안납니다.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뉴스를 듣는데, 앞으로는 공무원이 종교편향적인 짓을 못하도록 하는 공무원 복무규정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 뉴스를 듣고 제가 생각한 것을 대충 순서대로 정리하자면…

  1. 물론, 공무원이 종교에 대해서 편향적인 행동을 하면 안돼지… 잘하는 거야…
  2. 잠깐, 그럼 지금은 종교편향적인 행동을 해도 된다는 뜻? 어디 스님들 삥뜯으러 가 볼까?
  3. 잠깐, 나는 공무원이 아니지… 참자… 어디 공무원 친구 없나? 경찰이나 동사무소 방위나… 없을까?
  4. 그런데, 그러면, 그러니까 국민은 종교편향적인 행동을 하면 안되고, 공무원은 해도 된다는 뜻? 이런 1…8

잠깐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왜 종교차별을 못할까? 왜 학교에서 진화론이나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대법원까지 가고 난리를 칠까? 거기도 무슨 복무규정같은 게 있나?

아니오. 그건 바로 헌법위반이기 때문입니다. 치사하게 어디서 복무규정에 그런 게 없다는 이야기로 물타기나 하고 말야…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A: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대통령이(경찰이, 공무원이 아무 거나) 종교차별 행위를 합니까?
B: 아 미안. 법을 고쳐서 앞으로는 그렇게 못하게 할께.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법이 없어서, 내지는 복무규정에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그랬다는 거죠? 그것도 복무규정 고치려면 기독교 선교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묘한 균형을 잡으면서… 이런…

아래에서 금융위기나 한 번 10회쯤 시리즈로 써 볼까 했는데, 아무도 호응이 없어서 안쓸려고 하다가 그래도 오기가 있지(이건 내 블로그잖아) 그래서 앞으로 2번만 더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추천한 코틀러 마케팅 책을 사러 갔다가 다른 책도 사고 한 10만원 썼습니다. 안살려고 그러다가 (아래에도 말한 것처럼 저는 교과서 싫고 두꺼운 책 싫고 두꺼우면서도 표지가 두꺼운 책은 더 싫어합니다만, 교과서이고 두껍긴 하지만 표지가 얇아서) 샀습니다. 아무도 관심 없는 금융위기는 2번만 더 쓰고 (보나마나 금융위기보다 더 관심 없겠지만) 마케팅 이야기나 (그러니까, 마케팅 책 읽는 이야기나) 해 볼까 합니다. 혹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표지 얇고 책 두꺼운 코틀러 마케팅 책 베고 자는 사람 보면 인사 부탁합니다. ^^;;

댓글이라는 블루오션

Posted on April 20, 2008

요즘 인터넷상의 대화가 많은 부분 댓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블로그 포스트보다 댓글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젠 댓글 플랫폼에도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아닐까요?

한 번 댓글에 대해서 바라는 바를 적어 볼까요?

  1. 내가 다른 곳에서 쓴 댓글을 한 곳에서 확인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다.
  2. 내가 쓴 글에 대한 댓글을 어디서나 확인하고 싶다.
  3. 내가 쓴 모든 글에 대한 댓글에 대하여 (포스팅들 사이로 뛰어다니지 말고) 한 곳에서 댓글을 달고 싶다.
  4. 심지어는 블로그를 2 – 3 개 운영하거나, 또는 팀블을 하거나 또는 블로그를 옮기는 경우에도 댓글은 한 곳에서 유지하고 싶다.
  5. 하루에 한 번 정도 이메일로 댓글을 정리해서 보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댓글 관리가 쉽도록…
  6. 다른 곳에서 댓글을 달 때 내가 원하는 텍스트 포매터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7. 구글 지메일처럼 댓글 스팸을 집단지성을 이용해서 관리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스팸으로 마크한 댓글은 내 댓글에서도 자동으로 스팸으로 마크
  8. 댓글 이외의 연락 수단에 쉽게 연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메일, 채팅 등)
  9. 스패머 또는 악성 댓글러에 대한 공동 대응
  10. 댓글에 이미지, 영상, 파일 등 첨부
  11. -누가 내 댓글에 댓글좀 달아줘-
  12. 댓글 공동 관리 (팀블의 경우)
  13. 특정 댓글을 북마크, 별표, 링크저장하고 여기에 태그나 메모 등을 달 수 있었으면…
  14. (계속 추가할 예정)

놀랍게도, 이런 많은 요구사항들 가운데 많은 것이 중앙집중식 독립적인 댓글 서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지난 한 달 전에 한 다음에, 그냥 잊고 있었는데, 구글 애플 엔진 이야기를 듣고 이걸 한 번 GAE로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리고, disqus 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도 이런 서비스가 하나 안정적으로 믿을 만 하고 빠르게 돌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

Posted on April 20, 2008

요즘 한참 재미있게 구글 애플 엔진 을 가지고 놀다 보니 갑자기 내가 파이썬이라는 언어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한참 지나서야 들다니… 그러면서 갑자기 내가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하나도 끝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사실 프로그래밍 언어 책은 좀 지겹다.

그러다가 만약 프로그래밍이 언어라면, 내게 있어서 이 언어는 고고학자들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고대어를 언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에서의 언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점이라면, 나는 이 언어의 구조와 자주 사용하는 구문들에 대한 반복적인 사례 뿐만 아니라, 내가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바꾸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직접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 바꿨다고 해서 컴퓨터가 폭파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