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롤러코스터

Posted on May 28, 2008

괴테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언제나 악을 원하지만 결국은 선을 행하고야 마는…” 물론 이 말은 바울의 회한의 패러디입니다. “언제나 선을 원하지만, 결국은 악을 행하고야 마는…” (출전은 대충 파우스트나 성경 어디 찾아보면 나올겁니다).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이라는 악이 어떻게 시장이라고 하는 좋은 결과를 낳는지 제법 그럴듯하게 보여준 대가로 경제학의 아버지로 추앙받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고통을 과학으로 승화시켰다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아직은 정치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공공선택이론이나 뭐 이런 것들이 다 그런 것을 찾아 보려고 노력한 산물이니까요… 결론은 정치와 경제는 다르다는…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 처럼 서른 즈음에 잔치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웬만큼 짧은 인생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끝나기 전에는 역시 끝이 아닌가 봅니다.

(특히 블로그를 바꾸고 나서부터) 정치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 비슷한 이야기도 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블로거의 현실참여 라는 글을 읽고 한 자 남겨 보렵니다.

블로그스피어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떤 분께서 유명한 블로거를 비난하시는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 글의 요지는 블로그스피어에서 파워블로그라고 불리는 분이 왜 광우병 사태에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 왜 참여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블로그로 옮길 즈음 제가 개인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도 치기어린 배설행위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시원하고 통쾌하지만, 답도 없고, 내가 떠든다고 뭐 누가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인터넷에서 막말을 함으로써 남들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 보고자 하는 (저는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내지는 제가 이전에도 말한 것처럼 “마치 선술집에서 술 한잔 기울이면서 친구와 씹는” 수준의 이야기를 하고 나면 적어도 그날은 푹 잘 수 있는 것처럼, 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가능한 광우병 문제는 그냥 넘어가려 했었구요…

지금은 정반대의 이유에서 소위 광우병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함구하고 있습니다. 답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인터넷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이것들을 일일이 따라다닐 이유도 사명감도 답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의식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블로그 포스팅이 투표도 아닌바에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는 미투 포스트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구요…

그리고, 지금 이야기되는 촛불집회 문제는 분명히 다른 문제입니다. 싸가지 없는 정권이 내가 인터넷에서 떠들어대듯이 국민을 상대로 막말하고, 국민을 우습게 보고, 국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광우병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몇 년간 노무현 정권을 보면서 시대를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항상 뒤쳐져 있는 것 같아 답답했었지요. 이제는 마치 “서 있는 시계는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시간을 정확히 맞추지만, 느린 시계는 영원히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는 농담이 현실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도 여전히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소위 386 세대로서 남들이 겪는 정도의 고민과 고통과 비애를 겪으며 자랐습니다. 대학 4년을 도대체 뭘 배웠는지도 모르겠고, 대학졸업 이후에는 한동안 실패한 기획과 낭비한 젊음으로 인해 괴로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고통은 그 재기발랄하던 친구들이 정신적 육체적 피해와 낭비한 젊음의 대가를 아주 오랫동안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입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사람은 늙어가면 다 그렇지 않을까, 이게 우리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라고 인간 전체의 문제로 보편화하는 것입니다. 또 그에 못지 않게 괴로웠던 것은 앞에서 말한 메피스토펠레스의 회한입니다. 뭔가가 잘 안되면 혹시 그게 우리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다르게 했으면 혹시 다르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만가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여기에는 답이 없습니다.

수많은 변형과 변태와 왜곡을 보게 될 것입니다. 며칠전 민노씨 를 만나 이야기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광우병으로 XXX원을 벌었습니다”라는 포스팅을 올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물론 과장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가상입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가 광우병 관련 포스팅을 올립니다. 호응이 좋습니다. 계속 올립니다. 집회에 참가하고,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올립니다. 그 글을 읽고, 마음에 들어서, (또는 심지어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가 연행되어서) 달리 해줄 것도 없고 그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애드클릭이나 몇 방 클릭해 줍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가설적인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도덕적인 딜레마를 해결할 정도로 우리의 블로고스피어가 성숙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링크를 클릭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전후좌우 이야기를 다 빼고 “광우병으로 XXX를 벌었습니다”는 포스팅만 놓고 보자면 그 포스팅이 가져올 파장과 도덕적 딜레마는…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이 상황을 딜레마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사회의 근본 원칙에 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하지 않는 것도 아닌 묘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람이 팔 수 있는 것(부동산, 물건 등)은 민사법으로 규제하고, 사람이 팔아야 하는 것(토지 강제수용, 소송상의 합의)은 대체로 절차법으로 규제하고, 사람이 팔지 말아야 할 것(신체의 일부, 성적 자율)을 파는 경우에는 형사법으로 규제합니다. 정치적 의견은 팔 수 있는 것일까요? 팔아야 하는 것이거나, 팔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돈을 벌기 위해서 특정 정치적 의견을 약간 수정하거나 왜곡하거나 과장하면 그건 어떨까요? 그럼 돈을 버는 것과 무관하게 그렇게 하면? 그렇게 따지자면, 정치라는 게 결국 돈 문제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겠구요… 그럼 애드센스의 돈과 그 돈은 같은 돈일가요? 두번째로, 만약 어떤 사람이 광우병관련 글을 올렸는데, 많은 사람이 온라인으로 지지하고, (애드센스도 클릭해 주는 센스), 그래서 그 사람은 나중에 입장을 바꾸거나 관심이 시들해졌고 다른 일도 바빠졌지만, 독자의 기대에 호응하여 계속 글을 올리고 시위 현장에 가서 사진 찍고 블로그에 올리고 하다가 결국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되고, 회사에서도 짤리는 상황으로 갈 경우, (그리고 나중에 이걸 후회하게 될 경우), 계속 호응하고 지지하고 애드센스도 클릭한 우리가 혹시 그 사람을 그 방향으로 몰고간 게 되는 상황은 아예 없을까요? 아니면, 반대로 그가 실제로 계속 희생적인 정치활동을 하고, 감옥에도 가고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하였지만, 그 댓가로 애드센스에서 한 몇천만원 수익을 올렸다면, 이게 그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것인가요? 그리고,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나중에 좋은 결론이 나지 않으면, (혹은 원했던 결과를 낳지만 그게 결국 따지고 보면 별로 좋지는 않은 결과로 밝혀지면) 그건 또 도대체 어떻게 해야죠? 게다가 지난 선거기간에도 본 것 처럼 아주 많은 경우에 정치 이야기에 주력하는 블로그는 오프라인의 동기가 있는 것이 또 현실이구요…

뭐, 이런 이야기를 올리는 것은, 이런 문제가 답이 없는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저만 그런 거라면 좋겠지만, 우리의 블로고스피어는 이런 문제를 감당할 정도로까지 성숙한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하필이면 인터넷을 나의 정치적 도덕적 배설을 위한 창구로 쓰지 않겠다는 장한 결심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상황이 되어서 참 어렵습니다. 원래는 지난번에 썼던 글에 이어서 “Ambient Findability”에 대해서 글을 계속 쓰려 했었는데 (책도 곧 반납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되니 괜히 내 결심을 거스르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답도 없는 문제에 대해서 쓰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자니 괜히 초점을 흐트린다는 욕이나 먹을까 그것도 그렇고, 참 어렵습니다. 파워블로거가 아닌데도 이렇게 어려운 문제이니, 파워블로거들이야 얼마나 고민이 많겠습니까… 거의 매일 인터넷 비디오 보느라 잠도 못자고, 부시시하게 지내다가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니지만, 그냥 푸념삼아 한 번 써 봅니다. 그나저나 이번 사태로까지 간 기술적인 배경 내지는 이번 사태를 통해 모든 사람이 쓰게 될 기술은 인터넷 비디오 스트리밍이 아닐까 싶네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네요…

내 마음의 석기시대

Posted on May 22, 2008

요즘 Peter Morville의 “Ambient Findability”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검색 2.0”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판되었지요. 제목은 그렇지만, 이 책은 검색과 찾기(길찾기)에 대한 단편적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길찾기, 소셜 소프트웨어, 정보 검색, 의사결정도, 자기 조직화, 진화심리학, 문헌정보학, 그리고 권위” 등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웹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공간의 은유를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는 웹을 항해하고, 웹사이트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보고속도로, 홈페이지, 사이트맵, breadcrumb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네트워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많은 단어, 그러니까, 경로(path), 경계(edges), 구역(districts), 접점(nodes) 및 지형표식(landmarks) 등과 같은 말이 1960년 케빈 린치가 쓴 “도시의 이미지(The Image of the City)”에서 차용한 말이라고 합니다.

옆의 그림에서 hippocampus라고 표시된 부분이 우리가 흔히 “해마”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 아래의 amygdala라는 부분이 편도선입니다. 흔히 우리가 도마뱀의 뇌(lizard brain)이라고 하는 것으로 특히 공포와 같은 직접적인 감정을 다루는 곳입니다 (위키피디어 Lizard Brain 또는 amygdala 는 같은 곳입니다). 해마는 위치 정보 및 단기적 기억을 담당합니다 (위키피디어 Hippocampus ). 위의 책에 의하면 택시 운전사들은 해마가 아주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길을 찾게 하면 해마 부위의 활동이 증가합니다 (32쪽). 더 중요한 것은, 가상 미로나 비디오게임을 할 때도 비슷한 부위가 활발히 움직입니다. 그러면, 택시 운전사는 우리보다도 훨씬 더 나은 웹 서퍼일까요? 책에서도 말하듯이 웹에서 공간의 은유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공간의 은유를 현실로 만드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회사들이 (antarcti.ca, groxis, kartoo 등) 모두 실패합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생각의 연상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요즘 흥미를 가지고 읽고 있는 “행동경제학”에서 (행동경제학을 빼면 요즘은 경제나 투자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말하는 소위 도마뱀의 뇌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요지는 시장에서 돈을 벌려면 시장을 아는 것보다, 회사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원초적 감정을 통제하는 도마뱀의 뇌가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우리는 시장에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Blink”에서 이야기하는 순간 판단(snap decision)은 (거의) 모두 도마뱀의 뇌의 판단입니다. 투자에서는 별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군요.

그러니까, 이제는 경제학에서도 합리성이 지배하는 공간과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공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이 1900년대 초의 예수회 소속 고생물학자/철학자 Teilhard de Chardin이 이야기하는 noosphere 의 이야기와 비슷할까요? 나아가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굴의 비유 이야기도 생각나는군요.

또 이런 이야기를 하면, 김국현님 이 말하는 이상계, 환상계, 현실계의 구분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현실계에서 공간감각은 해마가 통제합니다. 그리고, 이 해마는 환상계(온라인 게임의 세계)에서도 유효합니다. 택시 운전사는 뛰어난 웹 서퍼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히 RPG의 세계에서는 날리겠군요. 그렇지만, 웹의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한 마디로 해마가 지배하는 공간의 측면보다는 의미론적인(semantic) 공간의 측면이 더 강합니다.

웹을 공간에 비유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비유일 뿐입니다. 즉 웹 스페이스에는 공간이 없습니다. 이것은 의미론적(semantic) 공간이지요. 비유를 할 때는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거죠.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가 봅시다. 2-3년전 아거님은 블로그의 에피소딕 기억과 시맨틱 기억에 대한 글 을 썼지요. 이 글에서 아거님은 많은 블로거들이 경험 공유하기와 관계 맺기 중심의 에피소딕 기억을 중심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에피소딕 기억은 위의 해마가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이제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 보겠습니다. 정보 이론에서 수량화하고 수학화하고 물리학적인 방법을 채택하려고 많은 시도가 있어왔지만, 이런 시도가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 즉 수량화의 블랙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정보과학에서는 이 블랙홀을 “사용자”라고 합니다 (54쪽). 단적인 예로, 수량화를 위한 첫걸음은 정보의 단위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정보란 무엇일까요? 정보를 규정할 때 데이터, 정보, 지식 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평가 및 검증된 데이터를 정보라고 하며, 이해하고 있는 정보를 지식이라고 합니다 (46쪽). 그렇다면, 인간이 개입되지 않은 정보나 지식이 가능할까요?

웹 2.0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맨틱 웹 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맨틱 웹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사용자”는 의미론적인 블랙홀일 수 있는 것이지요. 피터 모빌이 이야기하듯이, 인간의 발전은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 역사의 99%의 시간동안 인간은 수렵과 채취를 통해 먹고 살았지요. 이 기간이 약 천만년이라고 한다면, 농경의 역사는 1만년, 그리고 산업혁명은 200년, 그리고 정보혁명은? 그야말로 찰라의 세월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상계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지요. 이상계에서 어쩌면 우리의 도마뱀의 뇌는 두려움을 느끼고, 우리의 해마는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행동경제학의 핵심 주제가 동굴에서 살던 우리 선조들이 진화시킨 유전자는 현대의 금융환경에는 맞지 않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쩌면 시맨틱 웹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시맨틱 웹 보다는 구글의 페이지랭크나 딜리셔스 북마크같은 집단지성식의 접근법이 더 마음에 와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싸이월드 현상이나 네이버 현상도 한국인들이 해마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하나됨,” 일치, 대동, 단결, 화합, 통일 등의 절대선들은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이데올로기일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분열하고 갈등하고 대립하고 서로 싸우고 투쟁하는 것이 악이라구요? 어떤 나라에서는 그게 바로 정치인의 “사명” 내지는 “job description”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구요. 모든 정치인들이 일치하고, 대동단결하고 화합하고 화해하고 통일되어야 한다면, 왜 국회의원을 300명씩이나 뽑아야 하죠? 한 명만 있으면 되지… 말이 좀 새네요. 다시 돌아갑니다. 어쩌면 인간과 기계의 불가피한 대결은 터미네이터에서 말하는 것처럼 로봇 때문이 아니라, 금융 시장 때문에, 웹 때문에 그리고 매트릭스에서 말하듯이 환상계 때문에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윌리엄 깁슨이 말한 것처럼,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균등하게 분포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구요.

싫다는데 왜 자꾸

Posted on May 02, 2008

저녁에 잠깐 블로그 들어와보고 좀 놀랐습니다. 어제까지 70명대에서 머물러 있던 피드 구독자 수가 갑자기 570명대로 늘어났네요… 하루만에 500명이 구독을? 그래서 잠깐 구글 애널리틱스에도 들어가 봤는데 별 일이 없고, 다만 좀 특이한 게 RSS 으로부터 유입되어 오는 숫자가 좀 늘었더군요. 그리고 feedburner 가 봤더니 500명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한RSS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더군요. 그래서, 또 한RSS를 가서 새 피드 주소를 넣고 가입했더니 500명대의 숫자가… 그래서 글의 목록을 밑으로 내려보니 (열 몇개 이상은 없어야 정상인데) 제가 옛날에 다른 블로그에 썼던 글이 그대로 연결되어 있더군요.

뭐 싫다는 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야 싫을 이유야 없죠. 제가 블로그를 바꾸면서 피드버너의 단추를 단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쓰기 전에 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좀 말 좀 조심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하자는 뜻이었는데, 뭐랄까 느낌이 좀 달라지는군요. 마치 7-80명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와 자그마치 500명의 대상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려니 갑자기 너무 다른 기분이 드네요.

뭐 싫다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분명히 한RSS에 계신 분께서 수작업을 하신 것 같긴 한데(왜냐하면 다른 RSS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이어서 나온다는 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제가 생각했던 단절의 의미를 충분히 못살리는 것 같기도 하면서… 좀 더 생각해 봐야겠네요.

제가 블로그를 바꾸고 구글 애널리틱스를 달고, 가장 크게 신경쓰는 통계치가 Bounce Rate (현재 66.83%)와 Average Time on Site (현재 4:55) 두 가지 입니다. 트래픽은 신경을 끄기로 마음 먹었구요… (그래도 신경이 쓰이긴 합니다만) Bounce Rate에 대해서는 유명한 Seth Godin이 Silly traffic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This is a truth of the Internet: When traffic comes to your site without focused intent, it bounces.
75% of all unfocused visitors leave within three seconds.
Any site, anywhere, anytime. 75% bounce rate within three seconds.

대충 어쩌다 오게 된 사람이라는 거죠. 검색엔진에 의해서건, 디그닷컴이나 그런 것에 의해서건 아니면 도메인명을 잘 지어서이건… 어쨌든 이 블로그는 아직은 검색엔진을 통해 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대충 평균치보다 10%는 낮습니다. 그리고 제 사이트에 오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5분은 있어 주네요. 이런 이야기는 글을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다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Seth Godin은 이런 것 보다는 차라리 다른 것에 신경을 쓰라고 말하는군요.

  1. Engage your existing users far more deeply. Increase their participation, their devotion, their interconnection and their value.
  2. Turn those existing users into ambassadors, charged with the idea of bring you traffic that is focused, traffic with intent.

한RSS에 불평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맙죠. 그런데, 왠지 70명의 독자를 위하여 쓸 때의 기분과 (이 정도 규모에서는 대충 누군지 어느 정도까지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570명을 위하여 글을 쓰는 기분은 분명히 다르네요.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아쉽다는 건 이 블로그로 옮기고 나서 처음 1명부터 숫자가 조금씩 늘어날 때 느꼈던 재미랄까… 그런게 있었는데, 이제는 갑자기 도둑질이나 유산상속을 받은 것 같아요. Bounce rate와 average time에 신경을 쓰면, 왠지 글을 쓸 때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다시 한 번 “꼭 이런 글이 필요한가? 좀 더 뺄 부분은 없나?”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독자수도 그렇구요.

서문이 길었네요… 제목은 이 이야기와는 별로 상관 없습니다. 얼마전에 MS의 live mesh 이야기 를 하면서, 이게 레이 오지의 배경이나 로터스 노츠-그루브로 이어지는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렇게 느낀 사람이 저 만은 아니었나보네요. 게다가, 이 사람은 이것 때문에 아주 짜증이 난 모양입니다. 이 사람은 Joel on Software를 운영하는 Joel입니다. Architecture astronauts take over 라는 글에서 인용합니다. 표현이 재미있어서 한 번 옮겨 봅니다.

내가 일요일 저녁에 먹고 싶지 않았던 TV 디너를 계속 주고, 월요일 저녁에도 줬을 때 싫다고 했었는데도 주고, 그 다음에는 이걸 가루로 만들어 치즈를 뿌려서 화요일 저녁에 또 줬는데 그날도 난 먹지 않았고, 이제 수요일이 되자 TV 디너 전체를 맨 밑바닥부터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해서 그날도 내가 그렇게 먹고싶어 하지 않는 1955년식 솔즈베리 스테이크를 또 주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다음 세대를 위한 위대한 물건을 만드는 듯이 떠벌리고 다니면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사실 나로서는 지적으로 좀 어렵게 느껴지긴 한다.
It sort of bothers me, intellectually, that there are these people running around acting like they’re building the next great thing who keep serving us the same exact TV dinner that I didn’t want on Sunday night, and I didn’t want it when you tried to serve it again Monday night, and you crunched it up and mixed in some cheese and I didn’t eat that Tuesday night, and here it is Wednesday and you’ve rebuilt the whole goddamn TV dinner industry from the ground up and you’re giving me 1955 salisbury steak that I just DON’T WANT.

대충 번역했지만, 뭐 영어가 되는 사람은 전체를 읽어 보시면, 조엘 아저씨가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알겁니다. 그가 말하는 아키텍쳐 우주인이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문제를 풀려고 온갖 정성을 쏟아서 결국은 아무 상관 없는 문제에 대한 아무 상관 없는 해답을 내 놓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키텍처 우주인의 특징은 실제 문제를 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얼핏 보기에는 아주 많은 문제의 템플릿처럼 보이는 것을 풀고 있다.
The hallmark of an architecture astronaut is that they don’t solve an actual problem… they solve something that appears to be the template of a lot of problems.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이야기하지만, 이건 한국 정치 이야기가 아닙니다. 광우병 이야기도 아니고, 대운하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냥 사업 이야기이고, 인터넷 이야기이고, 좀 멀리 가자면 웹 2.0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는 재미있게 느꼈던 한 문제에 대해 히스테리를 부리는 한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왠지… 이 말은 하고 싶네요. 쓰뤠기 해결사의 가장 큰 폐해는 우리가 정작 중요한 문제를 푸는데 들여야 할 시간을 완전히 소진해 버려서 정장 중요한 문제에 닥쳤을 때에는 탈진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정치와 기업경영의 가장 큰 차이는 정치에서는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걸 직위를 이용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특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해서 해고할 수 없다는 거죠. 이런 차이를 모르는 사람을 우리는 기업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독재자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