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는 마케터입니다. 최고의 마케터를 꿈꿉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마케터로서 첫 발을 내디딘 날입니다. 그 동안 열심히 마케팅을 공부한 결과, 마케터로 취직되었고, 오늘은 첫 출근날입니다. 과제는 별다방으로 가서 소비자의 구매 원인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별다방 앞에서 막 들어가려는 사람을 잡고 물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왜 별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나요?”
그가 대답합니다.
“맞아. 내가 미쳤나봐. 이렇게 비싼 커피를 마시다니…”
그는 서둘러 발길을 돌립니다. 등 뒤에서 점장님의 싸늘한 눈빛이 비수처럼 꽃힙니다. 심지어 한 할머니는 양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처자, 고마우이… 덕분에 매일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시던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었어. 복 밭을겨…”
기가 막힙니다.
다른 사람들도 뭐 도움이 안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영희가 보기에는 커피 타는 아가씨 얼굴이 호신술인데, 어떤 남자는 커피 타는 아가씨 얼굴이 이뻐서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별다방의 고객 서비스에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자기는 친구가 여기서 보자고 했기 때문에 여기 온거지 평소에는 콩다방에만 다닌답니다. 나참.
사람은 합리적이라는 전제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기존의 경제학에 도전장을 던진 행동경제학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바로 행동재무학이라는 분야였구요, 그 다음으로 마케팅이 강한 호기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시스템 I/시스템 II, 직관과 합리성, 본능과 이성, 도마뱀의 뇌와 인간의 뇌… 아주 정확한 묘사는 아니지만, 대충은 서로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해빗” (닐 마틴 지음, 홍성태, 박지혜 옮김)의 저자는 습관적 사고와 관리적 사고라고 나눕니다.
사람은 원래 구매결정을 할 때 대개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별다방에 오는 사람들은 원래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굳이 “왜”라고 물어본게 화를 자초한거죠. 그냥 습관적으로 들어왔는데, “왜”라는 질문을 받고는 바로 “관리적 사고”로 넘어가서 스스로의 행동에 의문을 제시한거죠.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결심을 바꿉니다. 다른 사람은 억지로 아무 이유나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해서 아무 이야기나 만들어내면, 영희같은 마케터는 이것을 근거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어쩌라구요? 닐 마틴은 습관에 호소하는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고 합니다. 말이 쉽죠. 습관이 어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나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듣도보도 못한 제품에 대해서 어떻게 습관을 만들라구요?
닐 마틴의 이야기로부터 추론해 보자면(34-5페이지), 만약 자기가 현재 업계에서 1등이라면 고객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도록 즉 습관에 따라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거구요… 만약 1등의 아성을 도전하는 2등이라면 습관에 도전하고 생각하도록 유도해야한다는거죠. 그러면 고객은 스스로 비교할테니까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AC 닐슨의] 알라스타 고든과 던컨 스튜어트는 ‘오메가 룰’과 ‘델타 모멘트’를 기반으로 하는 델타퀄(DeltaQual)이라는 소비자 조사방법을 만들었다. 델타퀄 분석은 소비자의 무의식적인 구매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규칙을 분석해, 소비자들이 새로운 자극이나 브랜드에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 순간을 찾는 것이다.
소비자의 반복적인 구매 행동 속에 숨어 있는 규칙들의 집합, 오메가 룰은 소비자들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체크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은 반복 학습을 통해 경험적 지식을 갖게 되지만, 습관으로 형성된 후에는 그간의 반복 학습 과정을 잊어버린다. 즉, 자동적으로 운전하는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오메가 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 상황의 변화로 소비자가 오메가 룰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데, 이를 델타 모멘트라고 한다. 델타 모멘트는 습관에 의해 자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의식적으로 평가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델타 모멘트의 순간에 고객은 새로운 선택에 눈을 뜨게 된다. (71-72쪽)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도널드 노먼은 요즘 나오는 제품의 디자인이 너무 복잡한 것은 기업의 조직구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품은 기업의 조직 구조를 반영한다”는거죠 (59쪽). 그러니까, 한 100페이지쯤 넘어가 보면,
고객이 무의식적으로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힘들지만 기업의 조직부터 개편해야 한다. 기업 내 제품 창안자가 비전을 가진 리더가 되어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제품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처럼 말이다. 아이폰이나 아이맥이 잡스의 재품 개발 비전에 부합하지 못했다면, 아마 쓰레기통에 버려졌거나 계획 단계에서부터 수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VOD를 개발한 케이블 회사 내에는 ‘인터페이스가 모든 걸 망쳤어! 고쳐!”라고 목소리를 낼 만한 제품 챔피언이 아무도 없었다. (146-7쪽)
그러니까, 성질 나쁜 것도 축복이라는거죠.
고객의 85퍼센트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하거나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한 고객의 단 8퍼센트만이 재구매를 했다고 나타났다. 이 사실을 발견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객 만족을 위해 그동안 불철주야 고민하고 노력한 마케터와 CS 전문가에게 이 조사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객 만족’이 고객을 유지하는 데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기업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2-3쪽)
마케터의 일이라는게 따지고 보면 고객을 세뇌시키고, 훈련시키고, 적응시키고, 습관화하는건데 (어쩌면 그래서 전 이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고객만족이나 기타 회사에서 옳다고 두루두루 인정되는 가치들도 마케터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기 최면 내지는 습관적 사고의 일부가 아닐지… 어쩌면 이런 사고방식에도 델타 모멘트가 온 것은 아닌지…
책의 구성이 약간은 오디오판이 튀듯이 좀 왔다갔다합니다만, 그리고 (대부분의 마케팅 책이 그렇듯이) 따지고 보면 답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고 읽으면 나름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