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어낸) 상황: 갑자기 부장님이 내일 두바이로 출장을 가라고 하십니다. 시간도 촉박하고, 오후에는 웬만한 일은 미뤄두고 출장갈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두바이 친구들이야 뭐 지난번에도 봤었고, 큰 문제는 아니지만, 막상 문제는 떠나기까지입니다. 내일 모레가 장모님 생신이라고 합니다. 친한 친구가 4일 뒤에 결혼합니다. 아내는 임신 8개월입니다.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이번 출장의 관건입니다. inuit 님의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에 나오는 대로 아내에게 “속삭이기(WHISPer)” 준비를 하느라 오후를 다 보냈습니다. 일단 와이프가 지난번에 보고 군침을 흘렸던 루이띵똥 가방을 떡밥으로 잡기로 했습니다.
- Wake-up: 자고로 도마뱀은 관심을 끌 수 있는 질문으로, 첫마디로 사로잡아야 합니다. 와이프는 쇼핑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니(wake up) 루이띵똥이 딱입니다
- Hot: 소도구를 준비합니다 (루이띵똥 브로셔를 보여 줄까요?)
- Interest: 이게 가장 중요한데, 루이띵똥이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비타민을 인생에 필요불가결한 진통제로 둔갑시켜야 합니다. 다음번 대학 동창 모임에 그 가방도 없이 가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야 겠군요
- Story: 떡밥이 충분히 강력하므로 이야기까지야 뭐… 그렇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했습니다. 대충 라인은 여름에 열심히 일해서 가을에 루이띵똥을 산 개미와 대학 동창 모임이 다가와서 개미에게 가방을 빌리러 간 베짱이 이야기로…
- Persona: 협상을 프레이밍과 심리적 회계와 언어 선택의 문제입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연습합니다. “나는 지금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려 가는 것이 아니라, 루이띵똥이 세상에서 가장 싼 두바이로 가기 위해 일부러 남의 출장 일정을 가로챘다” 흠, 진정성이 좀 떨어지는군요..
오후 내도록 준비한 끝에 소도구(브로셔)도 구했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집으로 가자마자 말을 엽니다.
여보, 지난번에 봤던 이 루이띵똥 가방 있지? (wake up!) 이것 봐(hot)! 이거 있잖아, 내가 들었는데 두바이에 가면 말이지(interest)...
아내가 졸린 눈을 잠깐 뜨더니 말을 막습니다.
또 출장가? 이번엔 두바이? 나도 그 YES 책 읽었거든?
마지막 말에는 “성의는 고마운데, 난 도마뱀이 아니거든?”하는 뉘앙스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선수끼리 왜이래?”
2. 어제 inuit 님의 요트 이벤트 에 다녀 왔습니다. 고맙게 책도 한 부 받았습니다. 대충 10시쯤 집에 와서 놀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3시 정도에 다 읽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완독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적어도 출판과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ㅎ).
3. 선수끼리 왜 이러셔?: 오래전 로스쿨 오리엔테이션때 누가 말했습니다.
변호사는 출근하자마자 서로 핏대 올리고 삿대질하면서 싸우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사이좋게 손잡고 같이 밥먹으러 가는 직업이다.
선수들에게도 이게 통할까요? “BATNA”가 뭐고, 하면서 준비하면 그게 선수들 사이에서도 과연 통할까요? 거의 대부분의 경우, 기대할 대답은 “선수끼리 왜 이러셔?” 정도가 아닐까요?
이런 질문이 대체로 BATNA 이야기와 같이 협상에 임하는 프레임워크를 배울 때 항상 하게 되는 질문일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어떤 협상의 프레임워크를 알고 그에 맞춰서 준비했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해 협상력상의 경쟁우위를 갖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남이 아는 프레임워크를 모르고, 이에 따라 상대방과 비슷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면, 선수 대접도 못받습니다. 규칙을 모르는 선수는 퇴장감이죠.
4. 특히 협상 프레임워크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기가 도마뱀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트에서 inuit님께 물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말하시겠어요?” inuit님왈,
백금률이죠. 자기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는 것이요.
5. BATNA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잠깐만 다른 이야기.. 대부분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BATNA는 협상 테이블에서만 의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1년 내에 큰 자금이 필요해서 투자를 받으려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3-4개 회사가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그 중의 한 회사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조건이 맞지 않아요. 자기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나쁜 조건을 제시합니다. 이야기를 중단하고, 다른 회사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히려 처음 회사보다 나쁜 조건을 제시합니다. 이야기를 끝내고, 다른 회사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자금이 필요한 시한이 1년에서 7개월로, 4개월로 줄어, 어느새 2달 내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은 협상팀이 나빴던 것이라기 보다는 전략적으로 자신의 BATNA를 줄이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한거죠. 협상은 협상 테이블에서만 시작하고 끝난다고 믿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랄까요…
6. 다시 돌아오자면, 그래도 안심할 수 있는게, inuit님이 말하는 것은 “내가 도마뱀이니, 남도 도마뱀 대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요즘 트는 트베르스키와 카네만의 행동주의 경제학에서 하는 이야기를 협상 상황에 적용한 것입니다. 행동주의 경제학에서는 공포를 좌우하는 가장 원시적인 뇌를 “도마뱀의 뇌”라고 하고, 충성 등과 같은 것을 다루는 중단발전단계의 뇌를 “개의 뇌”라고 하고, 논리를 다루는 사람의 뇌는 가장 최근의 산물이라고 하죠. 근데, 블링크에서 말콤 글래드웰이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단은 도마뱀의 뇌에서 내리고, 사람의 뇌는 이 판단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거죠. 그러니, 협상와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에서 도마뱀의 뇌를 직접 자극하는 것은 아주 말이 되는거죠. 협상으로 말하자면, 중간관리자를 건너뛰고 직접 사장과 독대하는 거랄까요…
7. 그래도 행동주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을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소로스는 문제가 있는 상황에 처하면 (예를 들어 잘못된 투자 판단을 하려 하면) 배가 살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짜식, 좋겠네…”
inuit 님도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마뱀의 뇌는 통계적 사고에 능합니다. 그렇지만, 통계적 사고의 한계인 경험치가 낮느면(즉 데이터가 적으면) 신뢰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는 한계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러니까 아마추어는 괜히 소로스 따라한다고 까불다가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거죠. 뱀장사가 하는 말처럼, “애들은 가라”는 거죠.
8. 이벤트: 이웃 블로거께서 책을 쓰섰다고 하는데, 막상 읽어 보니 평소에 항상 신경쓰는 주제(협상)에 대해 요즘 제가 관심이 부쩍 많은 방법론(행동주의 경제학)을 적용하여 쓴 책이라 (게다가 하도 오랫만에 블로그를 하다보니 길이에 대한 감을 잃어) 말이 두서 없이 길어졌습니다. 각설하고,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실무적으로 아주 유용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이웃 블로거께서 쓴 책이라 이벤트 합니다(요트파티나 제가 책을 썼을 때 이벤트하셨던 것 같은 것과는 상관 없습니다. ㅎㅎ).
이벤트 방식은 inuit님께서 쓰신 “가장 듣고싶은 한마디 yes!”가 자기에게 단순한 비타민이 아니라 진통제일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댓글 또는 블로그에 쓰시면(블로그에 쓰셨을 경우에는 댓글 또는 트랙백으로 알려 주십시오) 3분께 책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3분이 넘을 경우에는 제 맘대로 (또는 inuit님께서 허락하시면 함께) 3분을 고르겠습니다. “가장 듣고싶은 한마디 yes!”를 읽은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쓰는 글인데도 무지하게 기네요. 그냥 저는 독자를 도마뱀 대접하지 않는다는 취지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