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Posted on December 02, 2008

원래 어제 쓰려다가, 어제는 갑자기 다른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오늘로 미뤘습니다. 이럴 때 한 번 더 잊어버리거나 미루면 영영 안쓰게 되죠…

얼마전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인가에 갔다가 헌책방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요즘은 가능하면 주말에는 좀 현실(금융, 경제)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읽으려다보니 집어들었고, 내친 김에 다 읽었습니다. 정말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핵심 주장은 다윈주의의 진화와 진보는 다르다는거죠. 우리는 보통 진화라고 하면, 뭔가 “더 나은 것”으로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아메바가 진화해서 “더 좋은” 인간 같은 것이 나왔다고 생각하죠.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진화란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일 뿐이므로, 여기에 목적성은 없다는거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지구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연륜으로 보나, 쪽수로 보다, 다양성이나 어떤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것은 박테리아라는거죠.

흔히 하는 오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진화는 더 좋은 것을 향해 나가는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는 말인데, 진화란 복잡성을 향해 나가는 운동이라는거죠. 진화가 되면 될수록 생명은 더 복잡해진다는건데, 이건 제이 굴드가 보기에는 평균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믿는 순진한 발상이거나, 인간중심주의를 지지하고자 하는 사악한 개념이라는거죠. 최빈값은 전혀 변함이 없는데, 평균이 조금 더 오른쪽으로 흘러갔다고 해서 그게 진화의 방향이고, 나아가서 더 좋은 방향이고,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박테리아가 웃을 짓이라는거죠. 그러니까, 고등생물로써 인간은 그냥 긴꼬리(롱테일)일 뿐이고, 주류는 박테리아라는 말씀, 그리고 진화의 결과 고등생물이 발생한 것은 진화가 가장 작고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라는(그러니까 더 작고 단순해질 수가 없다는 왼쪽벽이 있다는 이유) 즉, “랜덤워크”의 한 효과일 뿐이라는거죠.

따라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종에 작용하는 “표준적”인 자연선택에는 편향성이 없고, 기생생물에는 단순화시키는 편향성이 있지만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복잡성 증가의 편향성이 없다고 한다면, 계통 대부분의 진화사는 전체적으로는 복잡성을 조금이나마 감소시키는 경향을 보여줄 것이다. 대부분의 계통이 복잡성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하더라도 생명의 종 모양 곡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른쪽 꼬리를 확장시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복잡성이 더 낮은 왼쪽으로 이동하는 종은 이미 점유자가 있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데 비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희귀종은 점유자가 없는 복잡성이 보다 높은 영역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술주정뱅이가 도랑보다는 벽 쪽으로 더 많이 비틀거린다고 해도 결국은 도랑에 빠지고 만다. 그것은 벽에 부딪힐 경우에는 튕겨 나오고 도랑에 빠지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계통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시스템의 최대값은 다른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 (풀 하우스, 280-281페이지)

한 문단 안에 제가 요즘 관심이 있는 모든 단어, 그러니까 자연선택, 복잡성, 랜덤워크, 롱테일 등등이 (그리고 별로 관심이 없는 기생충과 블루오션 이야기까지도) 다 들어 있네요. 머리 아플 때 보면 아주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저자의 경이적인 지적 호기심과 논리를 따라가는 재미도 만만찮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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